홋카이도신문150910

소식

[기사]유골 1,000구, 망향 70년 한반도 출신자, 115구는 13일 한국으로. 반환 활동, 민간단체에 의지… – 홋카이도 신문 (번역)

10 Sep , 2015  

<70년만의 귀향>과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오늘 자 홋카이도신문 기사입니다.

홋카이도신문 웹에 올라온 내용 한글 번역본입니다.
전문은 따로 로그인을 해야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어, 웹 상에 올라온 만큼의 내용 공유합니다.

遺骨1000柱、望郷70年 朝鮮半島出身者、115柱は13日韓国へ 返還活動、民間頼み
09/10 07:00
유골 1,000구, 망향 70년 한반도 출신자, 115구는 13일 한국으로
반환 활동, 민간단체에 의지…

홋카이도신문150910

朝鮮出身者の遺骨を供養してきた常光寺の杉田英明さん。寺の移転に伴い、遺骨はそれぞれ湯飲み茶わんほどの小さなつぼに入っている
한국 출신자 유골을 공양해온 죠코지(상광사)의 스기타 히데아키스님. 절의 이전으로, 유골은 각각 찻잔 크기 정도의 작은 단지에 들어있다.

1945年(昭和20年)8月の終戦までに朝鮮半島から道内の炭鉱などに動員され、死亡した115人分の遺骨が今月、市民団体の手で韓国に帰る。今回の取り組みは、新たに遺族が見つかるなど大きな成果もあった。しかし、遺骨は日本国内になお1千柱以上が残されている。日韓関係の悪化で国による遺骨返還は実現しておらず、関係者からは「早ければ早いほど遺骨を家族の元へ返すことができる」と、早期の問題解決を望む声が上がっている。

1945년 8월 종전되기까지 한반도에서 도내 탄광 등에 동원되어 사망한 115구의 유골이 이번 달,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번 일은 새롭게 유족이 나타나는 등 큰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유골은 여전히 일본 국내에 천 구 이상이 남아 있다.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국가에 의한 유골 반환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관계자들은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며, 조속한 문제 해결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強制連行・強制労働犠牲者を考える北海道フォーラム」(殿平善彦共同代表)を中心とする約30人が13日、遺骨を携えて苫小牧発大洗行きフェリーで出発。陸路で九州まで運んだ後、釜山を経由し、ソウルの公営墓地に送り届ける。

<강제연행.강제노동 피해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 (도노히라 요시히코 공동대표)을 중심으로 약 30명이 13일, 유골과 함께 토마코마이발 오아라이행 페리로 출발한다. 육로로 규슈까지 운구한 후, 부산을 경유해 서울 공영묘지에 이른다.

115人分の遺骨は、道内4カ所の寺に保管されている。このうち6柱がある常光寺=美唄市=の前住職杉田英明さん(85)は「ずっと気掛かりだった。ようやくひと安心」と話す。

115구의 유골은 도내 절 네 곳에 보관되어 왔다. 이 중 6구가 있는 죠코지(비바이시)의 전 주지 스님인 스기타 히데아키스님(85)은 “계속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었다. 이제서야 한숨 돌린다”고 말했다.

寺の過去帳などによると、6柱は旧三菱美唄炭鉱で働き、「病気」や「落盤」で命を落とした朝鮮出身者。名前や出身地は分かっている。当時、寺の先代が葬儀を行ったが、遺骨が戦後も残された経緯は不明だ。

절의 기록 등에 의하면, 6구는 구 미쓰비시 비바이 탄광에서 일하다, 병이나 낙반으로 생명을 잃었던 당시 조선 출신자들. 이름과 출신지는 기록에 남아있다. 당시, 절의 선대 주지 스님이 장례를 치러주었지만, 유골이 전후에도 계속 절에 남게 된 경위는 밝혀져 있지 않다.

これまで遺族は見つかっていなかったが、今回の「帰郷」が決まった後、韓国の放送局の取材により1柱の遺族が見つかったと、放送局から同フォーラムのメンバーに連絡が入った。遺族はフォーラムの招待で寺を訪れ、遺骨の出発を見送る予定。杉田さんは「何がご縁になるか分からない。返還は一日でも早い方がいい」と話す。

지금까지 유족은 찾지 못했지만 이번 <귀향>이 결정된 후, 한국 방송국의 취재로 1구의 유족을 찾았다고, 방송국에서 포럼의 회원에게 연락이 왔다. 유족들은 포럼의 초대로 절을 방문해, 유골 운구를 배웅할 예정이다. 스기타 스님은 “무엇이 연이 될지 모른다. 반환은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厚生労働省によると、戦時下の労働力不足を埋めるため、朝鮮半島から道内や本州などの民間企業に動員され、死亡したとみられる人々の遺骨は、常光寺の6柱を含めて全国に1014柱ある。2004年の日韓首脳会談で韓国側が「遺骨の所在確認と返還」を要請し、日本政府も調査結果を韓国側に伝えているが、返還は見通せない状況だ。

일본 후생노동성에 의하면 전시 하에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한반도에서 홋카이도 도내와 일본 본토등에 있는 민간 기업에 동원되어,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유골은 죠코지에 있는 6구를 포함해 아직 전국에 1,014구 남아 있다. 2004년 한일정상회담에서 한국 측이 “유골 소재 확인과 반환”를 요구해, 일본 정부도 조사 결과를 한국 측에 전했으나, 반환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一方、今回返還される115柱のうち、常光寺の6柱を除く109柱は、遺骨を区別して身元を特定することができない。

한편, 이번에 반환되는 115구 중 죠코지의 6구를 제외한 109구는 유골이 섞여 있어 각 유골별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

西本願寺札幌別院(札幌市中央区)に保管されている71柱は、骨が少量ずつ混ざった「合葬」の状態で骨つぼに保管されている。名前や出身地の一覧はあるが、遺骨と合致させることはできない。それでも返還を決断したのは、韓国の遺族の強い要望があったからという。

니시혼간지 삿포로 별원(삿포로시 중앙구)에 보관되어 있는 71구는, 뼈가 조금 씩 섞여 “합장”상태로 유골함에 보관되어 있다. 이름과 출신지의 일람이 있긴 하지만 유골과 일치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반환을 결단한 이유는 한국 유족의 강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전문은 “홋카이도 신문(http://dd.hokkaido-np.co.jp/news/society/society/1-0177978-s.html” 일본 사이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 잘못된 번역은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