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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노동자 유골 “귀향” 여정 시작, 한국 유족 일본 방문 – 아사히신문 홋카이도판

13 Sep , 2015  

150912_텐유지추도식19

<70년만의 귀향>과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9월 13일 자 아사히신문 홋카이도판 기사입니다.

홋카이도신문 웹에 올라온 내용 한글 번역본입니다.

 

北海道)労働者の遺骨「帰郷」の旅始まる 韓国遺族来日
2015年9月13日03時00分
아시히신문 홋카이도판) 노동자 유골 “귀향” 여정 시작, 한국 유족 일본 방문

 

150912_텐유지추도식21

 

戦時下に道内で過酷な労働を強いられ、亡くなった朝鮮半島出身者115人分の遺骨を故郷に届ける市民らの旅が12日始まった。旅に同行する遺族らは浜頓別町の寺で最初の遺骨を受け取り、涙を流して故人を悼んだ。
전시 하에 홋카이도내에서 가혹한 노동을 강요 당하고 사망한 한반도 출신자 115명의 유골을 고향에 전하는 시민들의 여정이 12일 시작됐다. 여정에 동행하는 유족들은 하마톤베쓰의 절에서 첫 번째 유골들을 넘겨받아,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애도했다.

 

 

この日朝。同町にある天祐寺に、遺骨返還を計画した深川市の一乗寺住職、殿平善彦さん(70)や韓国からやって来た遺族7人ら計約30人が集まった。
이날 아침 같은 마을에 있는 사찰 텐유지에, 유골 반환을 계획한 후카가와시에 소재한 사찰 이치죠지의 주지 도노히라 요시히코(70)스님과 한국에서 온 유족 7명을 포함한 총 30명이 모였다.

 

祭壇の横には、現在の韓国にあたる地域の出身者34人分の遺骨が入った九つの木箱が安置されていた。34人は戦時下、天祐寺から北西約15キロにあった旧陸軍の浅茅野(あさじの)飛行場の建設に従事し、死亡したとされる。殿平さんらのグループがここ10年で発掘した。「謝罪の思いとともに遺骨を韓国までお持ちしたい」。殿平さんがあいさつすると、遺族らは涙をぬぐった。
현재 남한 출신자 34명의 유골들이 들어있는 아홉 개의 나무 상자가 제단 옆에는 안치되어 있었다. 희생자 34명은 전시 하에 텐유지에서 북서로 약 15km떨어진 구 육군부대 아사지노 비행장 건설에 징용되어 사망한 분들이다. 도노히라 스님이 속한 단체가 최근 10년에 걸쳐 발굴해왔다. “사과의 마음과 함께 유골을 한국까지 모시고 싶다”고 도노히라 스님이 인사하자 유족들은 눈물을 닦았다.

 

 

天祐寺の橋本俊弘・前住職が読経するなどして法要が営まれた。橋本氏は「仮安置されてきた遺骨がふるさとに返還されるのをずっと待っていました。肩の荷が下りました」と話した。
텐유지의 선대 주지인 하시모토 토시히로 스님이 독경으로 법요(추모 법회)가 치루어졌다. 하시모토 스님은 “임시적으로 안치되어 온 유골들이 고향에 반환되는 것을 학수고대해왔다. 이제 어깨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その後、参加者らは遺骨の入った木箱をバスまで運び入れた。一行は、別の遺骨を受け取るため、幌加内町の旧光顕寺に向かった。義理の弟の遺骨を受け取ることになっている李玉順(イオクスン)さん(88)は「義理の弟は私が病気になったとき、よく看病してくれた優しい人だった。その後二度と会えなくなり、とてもつらかった」と涙ながらに話した。
그 후 참가자들은 유골들이 든 나무상자를 버스까지 운구했다. 일행은 다른 지역에 보관되어 있는 유골을 넘겨 받기 위해 호로카나이 정의 구 코켄지로 향했다. 시동생의 유골을 받을 예정이신 이옥순 할머니(88)는 “시동생은 내가 아팠을 때 정성스레 간병해준 따뜻한 사람이었다. 징용된 후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어 너무나 괴로웠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一行は13日、美唄、札幌両市の寺で遺骨を受け取った後、東京や京都などの寺での追悼行事に参加し、山口県下関市からフェリーで韓国入り。20日、ソウルの追慕公園に遺骨を納める。
일행은 13일 비바이, 삿포로 두 곳에 소재한 절에서 유골을 받은 후, 도쿄, 교토 등지에 있는 절에서 추모 행사에 참석해 , 야마구치현에 있는 시모노세키항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올 20일 서울 추모공원에 유골을 안장할 예정이다.

 

 

戦時下に日本国内の民間事業所で働き、死亡した現韓国出身者の遺骨をめぐっては2004年、日韓首脳会談で民間徴用者の遺骨の所在確認と遺骨返還に向けて取り組むことで合意。厚生労働省によると、2798人の情報が寄せられ、うち1014人が朝鮮半島出身の可能性があるという。
전쟁 중에 일본 국내 민간업체에서 일하다 사망한 남한 출신자의 유골에 대해서는 2004년 한일정상회담에서, 민간 징용자 유골들의 소재 확인과 유골 반환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798명에 대한 제보가 있었고 그 중 1,014명은 한반도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殿平さんたちは遺族の要望を受けて返還の旅を計画。一方、政府レベルの返還はまだ実現していない。
도노히라 스님과 반환단은 유족의 요청에 의해 반환 여정을 계획했다. 한편 정부 차원의 반환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 원문 링크 : http://digital.asahi.com/articles/photo/AS20150912002845.html

** 잘못된 번역은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소식

[기사]70년 만의 귀향…홋카이도 강제노동 유골 115위 봉환 – 연합뉴스

11 Sep , 2015  

연합뉴스150911

<70년만의 귀향>과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9월 11일자 연합뉴스 기사입니다.

연합뉴스150911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끌려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 115명의 유골이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3천㎞ 거리를 달려 귀환한다. 광복 70년 만이다.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한국 측 대표단은 11일 일제강점기 홋카이도에서 강제노역하다 숨진 조선인 115명의 유골을 한국으로 봉환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한다.

100위(位)가 넘는 유골이 한꺼번에 봉환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단은 유족 7명과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 측 대표 ㈔평화디딤돌 관계자 등 총 15명으로 구성됐다.”

드디어 오늘 <70년만의 귀향>을 위한 일본에서의 귀향 여정이 시작됩니다.
참가한 분들, 이번에 귀환하게 되는 희생자 유골 모두 무사히 한국까지 오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7848168

70년 만의 귀향…홋카이도 강제노동 유골 115위 봉환

소식

[기사]유골 1,000구, 망향 70년 한반도 출신자, 115구는 13일 한국으로. 반환 활동, 민간단체에 의지… – 홋카이도 신문 (번역)

10 Sep , 2015  

홋카이도신문150910

<70년만의 귀향>과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오늘 자 홋카이도신문 기사입니다.

홋카이도신문 웹에 올라온 내용 한글 번역본입니다.
전문은 따로 로그인을 해야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어, 웹 상에 올라온 만큼의 내용 공유합니다.

遺骨1000柱、望郷70年 朝鮮半島出身者、115柱は13日韓国へ 返還活動、民間頼み
09/10 07:00
유골 1,000구, 망향 70년 한반도 출신자, 115구는 13일 한국으로
반환 활동, 민간단체에 의지…

홋카이도신문150910

朝鮮出身者の遺骨を供養してきた常光寺の杉田英明さん。寺の移転に伴い、遺骨はそれぞれ湯飲み茶わんほどの小さなつぼに入っている
한국 출신자 유골을 공양해온 죠코지(상광사)의 스기타 히데아키스님. 절의 이전으로, 유골은 각각 찻잔 크기 정도의 작은 단지에 들어있다.

1945年(昭和20年)8月の終戦までに朝鮮半島から道内の炭鉱などに動員され、死亡した115人分の遺骨が今月、市民団体の手で韓国に帰る。今回の取り組みは、新たに遺族が見つかるなど大きな成果もあった。しかし、遺骨は日本国内になお1千柱以上が残されている。日韓関係の悪化で国による遺骨返還は実現しておらず、関係者からは「早ければ早いほど遺骨を家族の元へ返すことができる」と、早期の問題解決を望む声が上がっている。

1945년 8월 종전되기까지 한반도에서 도내 탄광 등에 동원되어 사망한 115구의 유골이 이번 달,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번 일은 새롭게 유족이 나타나는 등 큰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유골은 여전히 일본 국내에 천 구 이상이 남아 있다.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국가에 의한 유골 반환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관계자들은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며, 조속한 문제 해결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強制連行・強制労働犠牲者を考える北海道フォーラム」(殿平善彦共同代表)を中心とする約30人が13日、遺骨を携えて苫小牧発大洗行きフェリーで出発。陸路で九州まで運んだ後、釜山を経由し、ソウルの公営墓地に送り届ける。

<강제연행.강제노동 피해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 (도노히라 요시히코 공동대표)을 중심으로 약 30명이 13일, 유골과 함께 토마코마이발 오아라이행 페리로 출발한다. 육로로 규슈까지 운구한 후, 부산을 경유해 서울 공영묘지에 이른다.

115人分の遺骨は、道内4カ所の寺に保管されている。このうち6柱がある常光寺=美唄市=の前住職杉田英明さん(85)は「ずっと気掛かりだった。ようやくひと安心」と話す。

115구의 유골은 도내 절 네 곳에 보관되어 왔다. 이 중 6구가 있는 죠코지(비바이시)의 전 주지 스님인 스기타 히데아키스님(85)은 “계속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었다. 이제서야 한숨 돌린다”고 말했다.

寺の過去帳などによると、6柱は旧三菱美唄炭鉱で働き、「病気」や「落盤」で命を落とした朝鮮出身者。名前や出身地は分かっている。当時、寺の先代が葬儀を行ったが、遺骨が戦後も残された経緯は不明だ。

절의 기록 등에 의하면, 6구는 구 미쓰비시 비바이 탄광에서 일하다, 병이나 낙반으로 생명을 잃었던 당시 조선 출신자들. 이름과 출신지는 기록에 남아있다. 당시, 절의 선대 주지 스님이 장례를 치러주었지만, 유골이 전후에도 계속 절에 남게 된 경위는 밝혀져 있지 않다.

これまで遺族は見つかっていなかったが、今回の「帰郷」が決まった後、韓国の放送局の取材により1柱の遺族が見つかったと、放送局から同フォーラムのメンバーに連絡が入った。遺族はフォーラムの招待で寺を訪れ、遺骨の出発を見送る予定。杉田さんは「何がご縁になるか分からない。返還は一日でも早い方がいい」と話す。

지금까지 유족은 찾지 못했지만 이번 <귀향>이 결정된 후, 한국 방송국의 취재로 1구의 유족을 찾았다고, 방송국에서 포럼의 회원에게 연락이 왔다. 유족들은 포럼의 초대로 절을 방문해, 유골 운구를 배웅할 예정이다. 스기타 스님은 “무엇이 연이 될지 모른다. 반환은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厚生労働省によると、戦時下の労働力不足を埋めるため、朝鮮半島から道内や本州などの民間企業に動員され、死亡したとみられる人々の遺骨は、常光寺の6柱を含めて全国に1014柱ある。2004年の日韓首脳会談で韓国側が「遺骨の所在確認と返還」を要請し、日本政府も調査結果を韓国側に伝えているが、返還は見通せない状況だ。

일본 후생노동성에 의하면 전시 하에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한반도에서 홋카이도 도내와 일본 본토등에 있는 민간 기업에 동원되어,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유골은 죠코지에 있는 6구를 포함해 아직 전국에 1,014구 남아 있다. 2004년 한일정상회담에서 한국 측이 “유골 소재 확인과 반환”를 요구해, 일본 정부도 조사 결과를 한국 측에 전했으나, 반환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一方、今回返還される115柱のうち、常光寺の6柱を除く109柱は、遺骨を区別して身元を特定することができない。

한편, 이번에 반환되는 115구 중 죠코지의 6구를 제외한 109구는 유골이 섞여 있어 각 유골별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

西本願寺札幌別院(札幌市中央区)に保管されている71柱は、骨が少量ずつ混ざった「合葬」の状態で骨つぼに保管されている。名前や出身地の一覧はあるが、遺骨と合致させることはできない。それでも返還を決断したのは、韓国の遺族の強い要望があったからという。

니시혼간지 삿포로 별원(삿포로시 중앙구)에 보관되어 있는 71구는, 뼈가 조금 씩 섞여 “합장”상태로 유골함에 보관되어 있다. 이름과 출신지의 일람이 있긴 하지만 유골과 일치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반환을 결단한 이유는 한국 유족의 강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전문은 “홋카이도 신문(http://dd.hokkaido-np.co.jp/news/society/society/1-0177978-s.html” 일본 사이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 잘못된 번역은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소식

[기사]서울도서관,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골발굴과정 사진전 – 연합뉴스

10 Sep , 2015  

연합뉴스150909

<70년만의 귀향>과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어제(9월 9일)자 연합뉴스 기사입니다.

어제는 사진전 <삶의 역사-70년만의 귀향>의 개막식이 있었던 날입니다.
기사에서는 사진전에 대한 소개와, 귀향 일정에 대해 보도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7843090

서울도서관,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골발굴과정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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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70년 만에…일본 강제징용 유골 100여구, 국내로 봉환 – JTBC

10 Sep , 2015  

뉴스룸150909

<70년만의 귀향>과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9월 9일자 JTBC 기사입니다.

이번에는 JTBC 뉴스룸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70년만의 귀향> 여정에 대한 것과 오늘부터 시작된 사진전에 대한 내용도 함께 나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37&aid=0000091135

70년 만에…일본 강제징용 유골 100여구, 국내로 봉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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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고향으로의 긴 여정: 일본-한국, 기억과 화해의 그 순간 / 테사 모리스-스즈키

9 Sep , 2015  

비바이 탄광. 전쟁 시기에 약 5천명에 달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징용되어 수용된 곳이다.

Long Journey Home: A Moment of Japan-Korea Remembrance and
Reconciliation
(The Asia-Pacific Journal, Vol. 13, Issue. 36, No. 1, August 31, 2015)

고향으로의 긴 여정: 일본-한국, 기억과 화해의 그 순간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 호주국립대 교수)

비바이 탄광. 전쟁 시기에 약 5천명에 달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징용되어 수용된 곳이다.

비바이 탄광. 전쟁 시기에 약 5천명에 달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징용되어 수용된 곳이다.

 

2015년 9월 11일 홋카이도 북부 타도시라 불리는 마을의 작은 절에서 놀라운 여정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날부터 열흘 간 일본인, 한국인 그리고 여러 나라 사람이 단체로 모여 홋카이도의 마을 몇 군데를 시작으로 돌면서, 도쿄와 교토를 거쳐 히로시마까지, 그리고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해협을 건너 한국의 부산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게 된다. 서울에서는 시청 앞 광장에서 대중과 함께 추모 장례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여정에 함께 참석하는 사람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일본에 노역자로 끌려 간 115명의 한국인(조선인)의 유해가 여정을 따라 옮겨지는 속에서 추모제가 진행되고 최종적으로 유해가 편히 쉴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9월에 유해를 옮기는 경로는 전시 일본의 머나먼 광산과 건설현장으로 이동하던 시절, 그들이 이용했던 경로를 거슬러 따라간다. 트럭, 배, 기차를 타고 머나먼 일본의 땅으로 이동하던 때, 그들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해 가족과 만나지 못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끝내 70년이 흘러서야 그들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슈마리나이의 우류댐.

슈마리나이의 우류댐.

전시 강제동원된 노역자들이 매장된 무덤 표식들

전시 강제동원된 노역자들이 매장된 무덤 표식들

 

이 여정은 말 그래도 여러 맥락에서 긴 여정이다. 목숨을 잃은 노역자의 유해 일부는 일본 내 가장 큰 불교집단인 조도신슈(淨土眞宗)에 소속된 사찰에서 전쟁 이후에 계속 안치되어 있었다. 안치된 유해 중에는 조선인 노역자 14구의 시신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시신은 5천 여명에 달하는 조선인 탄광노역자들이 끌려와 일하던 홋카이도 비바이 마을의 탄광에서 전시 와중에 가스가 폭발하면서 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것이다. 식민지 시기 조도신슈는 조선의 식민화에 적극 협력했고 일본적 종파를 따라 한국의 불교를 “개종”시키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조직 내에서 자신의 종파가 저지른 이 같은 과거 역사에 책임을 지며 반성을 도모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조도신슈의 니시혼간지파는 강제 동원된 노역자들의 유해를 사찰에 안치해 이들의 영혼을 달랠 의식을 거행하면서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련된 가족과 연락을 취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아사지노 군비행장 지역의 발굴 현장

아사지노 군비행장 지역의 발굴 현장

 

나머지 유해는 홋카이도 시민단체가 강제노역이 실시된 여러 지역에 대한 연구와 발굴을 통해 발굴한 것이다. 그 중 한 곳이 홋카이도 북서부의 슈마리나이 지역의 우류댐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1937년과 1943년 사이 거대 규모의 수력 댐 건설사업이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당시 동북아시아 지역 내 가장 큰 규모의 인공 호수가 만들어졌다. 또 다른 지역은 홋카이도의 북부 연안에 위치한 아사지노 비행장으로서 전시 동안에 군사 비행기지로 건설된 곳이다. 이 비행장 건설을 위해 무려 4백 명에 달하는 조선인 노역자들이 징용되었고 이 중 34구의 유해가 그 지역에서 시신으로 발굴되어 이 여정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노역자들이 겪은 가혹한 처지는 홋카이도에서 시행된 강제노역이라는 오랜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메이지 시대에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죄를 지어 노역에 종사하게 된 사람들이 홋카이도 섬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이 쇠사슬 고리에 묶인 채 철도와 도로 건설에 동원된다. 20세기가 시작되던 무렵 죄를 짓고 부역하던 노역자들은 더 이상 이 같은 건설 프로젝트에 동원되지 않았고, 이들을 대신해서 소위 “타코베야”(문어방)노역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 일을 떠맡게 된다. 타코베야 노역자들은 비좁고 갑갑한 상자 같은 공간에 감금되어 탈출하지 못하도록 엄중한 경계를 친 속에서 계속 일해야만 했다. 이런 식의 노역은 전시 기간 내내 지속되어 홋카이도의 탄광과 건설 노동자로 징용된 조선인은 145,000명, 중국인은 16,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저지른 이러한 강제노역의 기억은 아시아 주변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관계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Underwood 2006, 2010; Seaton 2015 참고).

 

슈마리나이의 추모비

슈마리나이의 추모비

슈마리나이에서 행해진 망자를 위한 아이누민족 의식 준비 장면

슈마리나이에서 행해진 망자를 위한 아이누민족 의식 준비 장면

 

고향으로의 귀환 여정을 조직하고 있는 핵심 인물은 “평화를 위한 동아시아 공동워크샵”의 구성원들이다. 1997년에 형성된 이 워크샵은 타도시에 자리잡고 있는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 인류학자 정병호와 여러 사람들,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이 올해 초 비영리기구로 새롭게 만든 동아시아 시민네트워크(한국측, 평화디딤돌)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8년의 기간 동안 워크샵은 일본,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을 함께 모아 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함께 슈마리나이와 아사지노 지역의 유해 발굴에 참여했다. 모두 합해 대략 1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워크샵에 함께 참여하면서 특히 한국과 일본의 미래 세대가 모여 과거에 대해 서로 배우며 의견을 교환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 것이다(Tonohira 2013: Morris-Suzuki 2013).

노역자들의 유골은 거대한 무덤 터 주변에서 발견되었는데 일부 유골은 개인적인 소지품과 함께 발굴되어 누구인지 식별 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이를 토대로 생존해있는 친인척을 찾아보거나 유해를 되돌려 보내고자 하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감정적으로도 괴로운 지난한 과정이 수년 동안 계속되었다. 다른 유골은 일본이라는 머나먼 땅의 구석진 곳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 무명인 채로 남아있기도 하다.

 

9월에 진행되는 고향으로의 귀환 여정

9월에 진행되는 고향으로의 귀환 여정

 

9월의 행사는 풀뿌리 시민단체가 추진하는 귀환 여정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다. 이 행사는 많은 일본인에게 전시 동안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를 바라는 염원이자 일본이 주변국가와의 화해를 도모하도록 촉구하는 증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염원은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부상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최근 일본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과오 속에서도 살아남아 진정성과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논란이 되는 과거 역사를 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불의로 인해 가해진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9월에 시도될 고향으로의 귀환 여정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그 길을 향한 중요한 첫 시작의 발걸음이 될 것이다. 동시에 기억과 화해를 위한 길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의 뿌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 대화의 장을 열어갈 평범한 사람들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귀환 여정을 조직하는 사람들에게 국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여정에 대한 한국어 사이트도 참고할 수 있다. http:www.return2015.com

테사 모리스-스즈키는 호주국립대학교 아시아태평양대학의 태평양과 아시아역사학과 일본사 교수이자 아시아-태평양 저널의 협력 편집인이다. 최근 저서로 <북한행 엑소더스(Exodus to North Korea: Shadows from Japan’s Cold War)>, Borderline Japan: Foreigners and Frontier Controls in the Postwar Era, To the Diamond Mountains: A Hundred-Year Journey Through China and Korea 등이 있다.

참고문헌
Morris-Suzuki, Tessa. 2013. “Letters to the Dead: Grassroots Historical Dialogue in East Asia’s Borderlands” In East Asia Beyond the History Wars: Confronting the Ghosts of Violence. Tessa Morris-Suzuki, Morris Low, Leonid Petrov and Timothy Y. Tsu. London: Routledge.
Seaton, Philip. 2015. Local History and War Memories in Hokkaido. London: Routledge.

Tonohira, Yoshihiko. 2013. Ikotsu: Katarikakeru Inochi no Konseki. Kyoto: Kamogawa Suhppan.

Underwood, William. 2006. “Names, Bones and Unpaid Wages: Seeking Redress for Korean Forced Labor.” Parts 1and 2.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17 September.

Underwood, William. 2010. “Redress Crossroads in Japan: Decisive Phase in Campaigns to Compensate Korean and Chinese Wartime Forced Laborers”. The Asia-Pacific Journal. 30-1-10, July 26.

 

* 원문 링크 http://japanfocus.org/-Tessa-Morris_Suzuki/4368/article.html

소식

[펀딩]7화. 유골이 묻혀 있던 그곳에 누워 하늘을 보았습니다

9 Sep , 2015  

송기찬쌤

<70년만의 귀향> 행사를 위해 진행 중인 다음 뉴스펀딩

7화. 유골이 묻혀 있던 그곳에 누워 하늘을 보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1473

7화는 동아시아 공동워크숍의 오랜 참가자인 송기찬 님이 글을 써주셨습니다.

오늘은 다른 어떤 말보다도, 펀딩 글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첫 유골이 발굴되었습니다. 드러난 유골의 형태로부터 그들이 돌아가신 분을 작은 구멍에 구겨 넣듯이 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매장이라기보다는 마치 쓰레기를 처리한 것과 같은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머나먼 이국땅에 끌려와 목숨을 위협하는 중노동 끝에 생명을 빼앗기고, 돌아가신 후에도 편히 쉬지 못하는 유골 앞에서 우리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게는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과의 첫 대면이었고, 이것이 제가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두 번째 만남이 되었습니다.

(중략)

대부분 참가자들이 조용히 절을 드리거나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한 일본인 목사님이 유골 앞에서 엎드려 흐느꼈고 재일동포 참가자 한 분은 유골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 흐느낌이, 그 통곡이 제게는 너무나 아팠습니다. 하나의 선명한 신체적인 통증으로 제 가슴에 다가왔던 그 아픔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 마음속에 조용히 유골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고향의 하늘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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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기사]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115구 70년만에 고국 품에 – 뉴스토마토

8 Sep , 2015  

70년만의 귀향 2차 수정-02_크기줄임

 

<70년만의 귀향>과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9월 8일자 뉴스토마토 기사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others/newsview?newsid=20150908113408896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115구 70년만에 고국 품에

소식

나비의 길 소개

5 Sep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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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America-Monarchs-Photo-2-butterfly

이번 유골 반환으로 115구의 유골이 귀향길에 오릅니다.
하지만 일본 전역에 강제노동으로 목숨을 잃고 타향의 차가운 땅 속에서 잠들지 못한 희생자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번 70년만의 귀향길에는 단지 115구의 희생자만이 함께 하지만,
일본 전역의 그 넋이라도 함께 귀향길에 오를 수 있으면 어떨까 합니다.
이를 위해, 서울시 광장에 큰 판을 마련하여,
나비모양의 포스트잇에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귀향을 추모의 마음과
희생자들의 넋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을 담아 적어 붙이는 행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나비는 영혼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노란 나비의 길에는 흰색이나 노란색 나비모양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회색 암흑의 바다에는 하늘색 나비모양 포스트잇을 붙여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는 희생자의 혼이나마 저희와 함께 귀향길에 올라 더 높이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이를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합니다.

소식

[펀딩]6화. “어머니, 우린 그렇게 죽었어요” 저들의 신음과 통곡소리

5 Sep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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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만의 귀향> 행사를 위해 진행 중인 다음 뉴스펀딩

6화. “어머니, 우린 그렇게 죽었어요” 저들의 신음과 통곡소리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1450

6화는 가수 정태춘 님의 시와 노래로 채워졌습니다.
동아시아공동워크숍 유골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경험을 담아 노래와 시를 만드셨는데, 이번 6화에서는 그 시와 노래를 모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워크숍 당시 직접 노래를 불렀던 영상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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